오대사 거란전 06 장종(莊宗)이 이사원(李嗣源) 등을 유주(幽州)로 보내 거란(契丹)에게 포위되어 있는 주덕위(周德

오대사 거란전 06 장종(莊宗)이 이사원(李嗣源) 등을 유주(幽州)로 보내 거란(契丹)에게 포위되어 있는 주덕위(周德 ... 원문 국역


장종(莊宗)이 이사원(李嗣源) 등을 유주(幽州)로 보내 거란(契丹)에게 포위되어 있는 주덕위(周德威)를 구원함

莊宗天祐十三年, 阿保機攻晉 蔚州, 執其振武節度使李嗣本. 是時, 莊宗已得魏博, 方南向與梁爭天下, 遣李存矩發山北兵. 存矩至祁溝關, 兵叛, 擁偏將盧文進擊殺存矩, 亡入契丹. 契丹攻破新州, 以文進部將劉殷守之. 莊宗遣周德威擊殷, 而文進引契丹數十萬大至, 德威懼, 引軍去, 爲契丹追及, 大敗之. 德威走幽州, 契丹圍之. 幽·薊之間, 虜騎遍滿山谷, 所得漢人, 以長繩連頭繫之於木, 漢人夜多自解逃去. 文進又教契丹爲火車·地道·起土山以攻城. 城中鎔銅鐵汁揮之, 中者輒爛墮. 德威拒守百餘日, 莊宗遣李嗣源·閻寶·李存審等救之. 契丹數爲嗣源等所敗, 乃解去.

장종(莊宗)이 이사원(李嗣源) 등을 유주(幽州)로 보내 거란(契丹)에게 포위되어 있는 주덕위(周德威)를 구원함

장종(莊宗) 천우(天祐) 13년(916), 아보기(阿保機)가 후진의 울주(蔚州) 주 001를 공격하고 그들의 진무주 002절도사(振武節度使) 이사본(李嗣本) 주 003을 사로잡았다. 이 때 장종은 이미 위박(魏博)주 004을 획득하고 바야흐로 남쪽으로 향해 후량과 천하를 다투고 있어 이존구(李存矩) 주 005를 보내 산 북쪽의 병사를 징발했다. 존구가 기구관(祁溝關)에 도달했을 때 병사들이 배반하고 장수[偏將] 노문진(盧文進) 주 006을 호위해 존구를 공격해 죽이고 도망쳐 거란(契丹)으로 들어갔다. 거란이 신주(新州) 주 007를 공격해 물리치고 문진의 부장(部將) 유은(劉殷)에게 그 곳을 수비하게 했다. 장종이 주덕위(周德威) 주 008를 보내 은(殷)을 공격했는데 문진이 거란 [출신의] 수십 만 [명]을 이끌고 대거 도달하자 덕위가 두려워하며 군사를 이끌고 [돌아] 가다 거란에게 추격을 당해 크게 패했다. 덕위가 유주(幽州)로 달아나자 거란이 그를 포위했다. 유[주](幽州)와 계(薊) 주 009 사이에는 거란 기병[虜騎]들이 산곡(山谷)에 두루 가득찼고 [거란은] 획득한 한인들을 긴 줄로 머리를 연결해 나무에 매달았는데, 한인들이 밤중에 많이들 스스로 [줄을] 풀고 도망쳐 갔다. 문진이 또 거란에게 화차(火車)와 지도(地道)를 만들고 토산(土山)을 세워 성(城)을 공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성] 가운데로 동(銅)과 철(鐵)을 녹여 쇳물을 흐르게 했는데 가운데가 번번이 불에 그을려 무너져 내렸다. 덕위가 백여 일 동안 저항하며 [성을] 수비하자 장종이 이사원(李嗣源) 주 010·염보(閻寶)·이존심(李存審) 등을 보내 그를 구원하였다. 거란은 여러 차례 사원(嗣源) 등에게 패하자 곧 [포위를] 풀고 [돌아]갔다.


각주 001)

蔚州: 北魏 永安 연간(528~530) 懷荒·御夷鎭(지금의 河北省 張北과 赤城市 북쪽)에 설치한 州의 이름으로 北周에서는 치소를 靈丘縣(지금의 山西省 靈丘縣)으로 옮겼다. 수 대업 초(605~617) 폐지했다가 당 武德 6년(623) 다시 설치했고 이후 치소를 繁畤縣(지금의 山西省 繁畤縣 서쪽)·秀容縣 북쪽 恒州城(지금의 山西省 忻縣 서북쪽)·영구현·安邊縣(至德 연간, 興唐縣으로 고쳤다) 등으로 옮겼다. 오대 後梁 開平 연간(907~911) 隆化縣으로 고쳤다가 同光(923~926)初 다시 흥당현으로 고쳤는데 지금의 河北省 蔚縣이다.  바로가기

각주 002)

振武: 振武軍을 말한다. 당 景龍 2년(708) 설치했고 치소는 東受降城(지금의 內蒙古自治區 托克托西南)이다. 天寶 4년(745) 치소를 金河縣(지금의 內蒙古自治區 和林格尒 서북)으로 옮겼고 오대 후당 때에는 朔州(지금의 山西省 朔縣)로 옮겼다.  바로가기

각주 003)

李嗣本: 雁門 출신으로 본래 성은 張氏이다. 어려서 이극용을 위해 帳中에서 紀綱을 잡고 戰功을 쌓아 義兒軍使·檢校刑部尙書·馬軍都將 등을 역임했다. 이어 雲·蔚·應·朔等州都知兵馬使, 檢校太保 등을 거쳐 관직이 振武軍節度使에 이르렀다. 후에 거란에 생포되었다.  바로가기

각주 004)

魏博: 당 廣德 원년(763) 설치한 方鎭의 이름이다. 치소는 魏州(지금의 河北省 大名縣 동북)에 있다. 天祐 원년(904) 天雄軍이라 불렀다.  바로가기

각주 005)

李存矩: 後唐의 태조인 李克用의 아들이다.  바로가기

각주 006)

盧文進: 范陽 출신으로 字는 國用(일명 大用)이다. 처음에는 劉守光의 騎將이었는데 후당에 항복한 후 州刺史·新州大將 등을 역임했다. 李存矩를 습격해 살해하고 거란으로 달아나 幽州節度使에 제수되었다. 1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병사를 이끌고 당의 변경을 공격했으나 천성 2년(927) 당에 의탁해 滑州節度使·義成軍節度使·檢校太衛가 되었다. 또 다시 南唐에 항복해 左衛上將軍 겸 中書令·宣潤節度使가 되었고 范陽郡王에 봉해졌다. 후에 金陵에서 죽었다.  바로가기

각주 007)

新州: 光啓 연간(885~887)에 설치한 州의 이름이다. 後晉은 이 곳에 威塞軍을 설치해 永興縣을 관할했고 치소는 지금의 河北省 涿鹿縣이다. 遼는 이를 고쳐 奉聖州라 하였다.  바로가기

각주 008)

周德威: 字는 鎭遠이며 朔州 馬邑(지금의 山西省 朔縣) 출신이다. 용맹하고 지략이 있었으며 晉王을 섬겨 騎將이 되었고 공을 쌓아 衙內指揮使가 되었고 潞州를 공격해 탈취한 후 代州刺史·內外蕃漢馬步軍都指揮使가 되었다. 莊宗을 따라 後梁軍을 공격하고 振武節度使·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 유수광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盧龍軍節度使가 되었다. 후량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莊宗이 즉위 후 太傅를 추증했다.  바로가기

각주 009)

薊: 지금의 北京市 및 그 부근을 말한다. 바로가기

각주 010)

李嗣源(867~933; 재위 926~933): 후당의 황제로 沙陀族이며 代北(지금의 山西省 代縣) 출신이다. 본명은 邈佶烈인데 후에 이극용의 養子가 되어 이름을 이사원으로 고치고 즉위 후 또 다시 亶으로 고쳤다. 이극용·존욱 부자를 따라 정벌에 참여해 공을 세우고 相州刺史·昭德軍節度使 등을 역임했다. 同光 4년(926) 魏州에서 일어난 兵亂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격했으나 반란군과 합세해 洛陽으로 回軍했다. 장종이 반란군에게 시해되자 군신들이 그를 추대했다. 그 또한 말년에는 가혹하고 殺戮을 일삼아 秦王 從榮이 일으킨 반란 과정에서 그 憤을 참지 못하고 죽었다. 廟號는 明宗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장종(莊宗), 아보기(阿保機), 이사본(李嗣本), 장종, 이존구(李存矩), 존구, 노문진(盧文進), 존구, 문진, 유은(劉殷), 장종, 주덕위(周德威), 은(殷), 문진, 덕위, 덕위, 문진, 덕위, 장종, 이사원(李嗣源), 염보(閻寶), 이존심(李存審), 사원(嗣源)

지명

후진, 울주(蔚州), 위박, 후량, 기구관(祁溝關), 거란(契丹), 거란, 신주(新州), 거란, 거란, 유주(幽州), 거란, 유[주](幽州), 계(薊), 거란, 거란, 거란, 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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