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사 거란전 04_아보기(阿保機)가 한인(漢人)들을 이끌고 한성(漢城)으로 천도하여 세력을 확보한 뒤 대인(大人)들
오대사 거란전 04_아보기(阿保機)가 한인(漢人)들을 이끌고 한성(漢城)으로 천도하여 세력을 확보한 뒤 대인(大人)들
// 아보기(阿保機)가 한인(漢人)들을 이끌고 한성(漢城)으로 천도하여 세력을 확보한 뒤 대인(大人)들 ... 원문 국역
아보기(阿保機)가 한인(漢人)들을 이끌고 한성(漢城)으로 천도하여 세력을 확보한 뒤 대인(大人)들을 살해하고 즉위함
아보기(阿保機) 또한 그가 어느 부락 사람인지 알지 못하지만
[ //책사풍후 주석 :
진국공주 무덤의 벽의 묘지명에 야율씨가 본래 성씨가 고려의 고씨라고 나온다.
그럼 야율씨가 발해를 멸망시킨건 감히 고려의 별종인 말갈족 혼혈 걸걸씨 조영이가
감히 국호 고려를 사칭하며 고씨 부인과 결혼하여 살고 고려계 수나라계 당나라계 거란계 돌궐계 신하들과 말갈족 무장들을 거느리고 당나라에 조공하고 책봉받으며 살고
옛 고려 수도 평양은 버려두고 황무지로 내비두니 이는 도저히
고려 후손이 할 짓이 아니라. 이에 야율씨가 발해를 대의로서 쳐밟아버린 것이니
낙랑 대방 왕씨 후손 왕건이 따위가 감히 야율씨의 정벌을 뭐라 할게 못된다. ]
[그의] 사람됨은 지혜와 용맹함이 많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다.
당시 유수광(劉守光) 주 001은 폭정을 일삼고 잔혹하여 유[주](幽州)와 탁[주](涿州) 주 002 사람들이 많이들 거란(契丹)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아보기가 이 틈을 타고 변경으로 들어가 성읍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그 백성[人民]들을 사로잡아 당(唐)의 주현(州縣)을 본따 성(城)을 설치하여 [그들을] 살게 했다. 한인(漢人)들이 아보기에게 충고하여 말하기를, “중국의 왕은 [다른 사람의 지위를] 대신 이어받아 즉위한 자가 없었소.”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아보기는 더욱 더 여러 부락[諸部]을 위협하고 통제해 기꺼이 [그 지위를 다른 사람이] 이어받지 못하게 했다.
그가 즉위한 지 9년째에, 여러 부락[의 대인들]이 그가 오랫동안 [그 지위에] 있어 [다른 사람이] 이어받지 못하자 모두 그를 책망했다. 아보기(阿保機)가 어쩔 수 없어 그의 깃발과 북을 전하고 여러 부락에 일러 말하기를, “내가 즉위한 지 9년으로 한인을 얻은 바가 많으니, 내가 직접 [이들을] 하나의 부락으로 삼아 한성(漢城) 주 003을 다스리고자 하는데 가능하겠는가?”라고 하자 여러 부락이 이를 허락하였다. 한성은 탄산(炭山) 주 004의 동남쪽 난하(灤河) 상류에 있는데 염철(鹽鐵)[에서 얻는] 이득이 있었고 곧 [이 일대는] 후위(後魏) 때에는 활염현(滑鹽縣)이었다. 그 땅에는 오곡(五穀)을 심을 수 있어 아보기는 한인을 거느리고 농사를 지었고 성곽(城郭)과 읍옥(邑屋), 무역시장[廛市]을 만들어 다스리기를 [당이] 유주(幽州)[를 다스리는] 제도와 같게 하니 한인들이 편안해 하며 다시 [당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보기는 무리를 기용할 수 있음을 알고 그[의] 처 술률(述律) 주 005이 낸 책략을 사용하여 사람을 시켜 여러 부락의 대인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에게는 염지(鹽池)가 있어 [거기서 나는 소금을] 여러 부락이 먹는다. 그런데 여러 부락[의 대인들]은 식용 소금[食鹽]의 이익은 알면서도 소금에 주인이 있음은 알지 못하니 가능한 일인가? 의당 와서 나에게 음식을 베풀어 위로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러 부락의 대인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모두 소와 술을 [갖고] 염지에 모였다. 아보기는 그의 곁에 복병(伏兵)을 두었는데 주연(酒宴)이 한창 무르익자 [복병이] 나타나 여러 부락의 대인들을 모두 죽이고 마침내 즉위하여 다시는 [다른 사람이 그 지위를] 이어받지 못하게 했다.
阿保機, 亦不知其何部人也, 爲人多智勇而善騎射. 是時, 劉守光暴虐, 幽·涿之人多亡入契丹. 阿保機乘間入塞, 攻陷城邑, 俘其人民, 依唐州縣置城以居之. 漢人教阿保機曰:「中國之王無代立者.」 由是阿保機益以威制諸部而不肯代. 其立九年, 諸部以其久不代, 共責誚之. 阿保機不得已, 傳其旗鼓, 而謂諸部曰:「吾立九年, 所得漢人多矣, 吾欲自爲一部以治漢城, 可乎?」 諸部許之. 漢城在炭山東南灤河上, 有鹽鐵之利, 乃後魏 滑鹽縣也. 其地可植五穀, 阿保機率漢人耕種, 爲治城郭邑屋廛市如幽州制度, 漢人安之, 不復思歸. 阿保機知衆可用, 用其妻述律 주 001策, 使人告諸部大人曰:「我有鹽池, 諸部所食. 然諸部知食鹽之利, 而不知鹽有主人, 可乎? 當來犒我.」 諸部以爲然, 共以牛酒會鹽池. 阿保機伏兵其旁, 酒酣伏發, 盡殺諸部大人, 遂立, 不復代.
교감주 001)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述律’이 ‘舒嚕’로 되어 있다. 이하 ‘述律’은 모두 동일하다.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阿保機, 劉守光, 阿保機, 阿保機, 阿保機, 阿保機, 阿保機, 阿保機, 述律, 阿保機
지명
幽, 涿, 契丹, 唐, 中國, 漢城, 漢城, 炭山, 灤河, 後魏, 滑鹽縣, 幽州
각주 001)
劉守光(?~914): 深州 출신으로 劉仁恭의 아들이다. 바로가기
각주 002)
涿州 :唐 大歷 4년(769) 설치한 州의 이름으로 치소는 范陽縣(지금의 河北省 涿縣)이다. 天祐 4년(907) 周德威가 祁溝關에 침입해 탁주를 취했다. 後晉 天福 원년(936) 晉高祖가 즉위하여 국호를 晉이라 하고 탁주 등 16주를 거란에 편입시켰다. 바로가기
각주 003)
漢城: 거란의 耶律阿保機가 부획한 한인들을 거주시키기 위해 축조한 지명으로 지금의 河北省 灤平縣에 그 舊址가 있다. 바로가기
각주 004)
炭山: 산의 이름으로 陘頭라고도 한다. 지금의 河北省 獨石口外 西北 灤河 상류에 있다. 요의 황제들이 더위를 피하고 사냥을 하던 곳이다. 일설에는 지금의 獨石口外東 黑龍山이라고도 한다. 바로가기
각주 005)
述律(?~947): 야율아보기의 황후로 이름은 平이고 술률은 遼姓이다. 天懸 2년(927) 德光을 帝로 세우고 자신은 皇太后로 존숭되었는데 大同 원년(947) 손자인 兀欲에 의해 祖州에 유폐되었다가 木葉山에서 죽었다. 『舊五代史』에서는 “述律氏”로 적고 있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아보기(阿保機), 유수광(劉守光), 아보기, 아보기, 아보기, 아보기(阿保機), 아보기, 아보기, 술률(述律), 아보기
지명
유[주](幽州), 탁[주](涿州), 거란(契丹), 당(唐), 중국, 한성(漢城), 한성, 탄산(炭山), 난하(灤河), 후위(後魏), 활염현(滑鹽縣), 당, 유주(幽州),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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