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사 거란전 03_거란(契丹)의 위치·팔부(八部) 및 통치방식에 대한 설명

오대사 거란전 03_거란(契丹)의 위치·팔부(八部) 및 통치방식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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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契丹)의 위치·팔부(八部) 및 통치방식에 대한 설명 원문 국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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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契丹)의 위치·팔부(八部) 및 통치방식에 대한 설명

국가

거란(契丹)

거란(契丹)은 후위(後魏) 주 001 이래로 이름이 중국[측 사서]에 보인다. 때로 고막해(庫莫奚) 주 002와는 같은 [이적(夷狄)의] 부류[同類]이나 [혈연적으로는] 다른 종족[異種]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살던 곳을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 주 003라고 말한다. 몰리(沒里)는 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황수(黃水) 주 004의 남쪽, 황룡(黃龍) 주 005의 북쪽을 이르는 것으로 선비(鮮卑) 주 006의 옛 땅을 획득한 것이라 예로부터 또한 선비(鮮卑)의 남겨진 무리[遺種]라고 말했다. 당대(唐代)에 그[들이 살던] 땅은 북쪽으로 실위(室韋) 주 007와 접했고 동쪽으로는 고려(高麗) 주 008와 인접했고 서쪽으로는 해국(奚國) 주 009과 이웃했고 남쪽으로는 [당의] 영주(營州) 주 010에 이르렀다.

그들의 부족 중 [세력이] 큰 것을 대하씨(大賀氏)주 011라 불렀고 후에 팔부(八部)로 나뉘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차개리부(伹皆利部)라 불렀고, 두 번째는 을실활부(乙室活部)라 불렀고, 세 번째는 실활부(實活部)라 불렀고 네 번째는 납미부(納尾部)라 불렀고, 다섯 번째는 빈몰부(頻沒部)라 불렀고 여섯 번째는 내회계부(內會雞部)라 불렀고, 일곱 번째는 집해부(集解部)라 불렀고, 여덟 번째는 해올부(奚嗢部)라 불렀다. 부락[部]의 지배자[長]는 대인(大人)이라 불렀고 보통 한 명의 대인을 추대해 깃발과 북[旗鼓]을 세워 팔부를 다스리게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때로 그 나라[國]에 재앙과 질병이 발생해 목축이 쇠락하게 되면 팔부가 모여 의논했고 깃발과 북으로써 그 다음 [차례의 대인]을 세우고 대인의 지위를 이어받게 하였다. [대인의 지위를] 이어받게 된 자는 나무에 새긴 맹약[約本]에 이와 같이 되어 있음을 알고 감히 다투지 않았다. 어떤 부[락의] 대인이었던 요연(遙輦)주 012이 다음 [차례가 되어] 대인이 되었는데 이 때 유인공(劉仁恭) 주 013은 유주(幽州) 주 014에 웅거(雄據)하고 있다가 여러 차례 적성령(摘星嶺) 주 015으로 병사를 출격시켜 그들을 공격했다. 해마다 가을이 되어 서리가 내리면 그 들판의 풀을 불태워 거란(契丹)의 말들이 굶어 죽는 일이 많았고 [그러면 거란인들은] 곧 양마(良馬)를 인공에게 재물로 주어 목지(牧地)를 구하고 맹약을 지켜줄 것을 청했는데 상당히 공손하였다. 팔부[에 속한] 사람들은 요연에게 [대인의] 임무를 맡길 수 없자 그 무리 중에서 [대인을] 뽑아 아보기(阿保機) 주 016가 그 [지위를] 이어받았다.


契丹自後魏以來, 名見中國. 或曰與庫莫奚同類而異種주 001. 其居曰梟羅箇沒里 주 002. 沒里주 003者, 河也. 是謂黃水之南, 黃龍之北, 得鮮卑之故地, 故又以爲鮮卑之遺種주 004. 當唐之世, 其地北接室韋, 東隣高麗, 西界奚國, 而南至營州. 其部族之大者曰大賀氏, 後分爲八部, 其一曰伹皆利部 주 005, 二曰乙室活部 주 006, 三曰實活部 주 007, 四曰納尾部 주 008, 五曰頻沒部 주 009, 六曰內會雞部 주 010, 七曰集解部 주 011, 八曰奚嗢部 주 012. 部之長號大人, 而常推一大人建旗鼓以統八部. 至其歲久, 或其國有災疾而畜牧衰, 則八部聚議, 以旗鼓立其次而代之. 被代者以爲約本如此, 不敢爭. 某部大人遙輦주 013次立, 時劉仁恭據有幽州, 數出兵摘星嶺攻之, 每歲秋霜落, 則燒其野草, 契丹馬多飢死, 卽以良馬賂仁恭求市牧地, 請聽盟約甚謹. 八部之人以爲遙輦주 014不任事, 選於其衆, 以阿保機 주 015代之.

교감주 001)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種’자가 ‘族’자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2)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梟羅箇沒里’가 ‘尼嚕古穆稜’으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3)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沒里’가 ‘穆稜’으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4)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種’자가 ‘族’자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5)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伹皆利部’가 ‘達爾扎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6)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乙室活部’가 ‘伊斯琿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7)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實活部’가 ‘舍琿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8)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納尾部’가 ‘諾爾威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09)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頻沒部’가 ‘婆摩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10)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內會雞部’가 ‘納古濟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11)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集解部’가 ‘濟勒勤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12)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奚嗢部’가 ‘實衮部’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13)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遙輦’이 ‘約尼’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14)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遙輦’이 ‘約尼’로 되어 있다.바로가기

교감주 015)

『五代史』(摛澡堂四庫全書 本, 浙江大學)에는 ‘阿保機’자가 ‘安巴堅’으로 되어 있다. 이하 ‘阿保機’는 모두 동일하다.바로가기




각주 001)

後魏(386∼534): 南北朝時代 華北을 지배했던 왕조인 北魏를 가리키는 것이다. 魏·元魏·拓跋魏 등으로도 불린다.  바로가기

각주 002)

庫莫奚: 東胡의 하나로 饒樂水(지금의 시라무렌강) 유역에 살았고, 유목과 사냥을 겸했다. 北魏時代 종족이 점차 번성하여 辱紇主·莫賀弗·契箇·木昆·室得 등 五部로 나뉘었고, 점차 契丹에 同化되었다. 庫莫奚란 명칭은 몽고어의 komagli 혹은 퉁그스어 계통인 solon語 khomugé의 음차로, 이들의 거주지에 사막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白鳥庫吉, 1912: 1136).  바로가기

각주 003)

梟羅箇沒里: 강의 이름으로 潢水(지금의 시라무렌강)의 거란어음역이다. 바로가기

각주 004)

黃水: 지금의 內蒙古自治區 시라무렌강 및 하류의 西遼河를 말한다. 『舊五代史』에서는 “潢水”로 적고 있다. 바로가기

각주 005)

黃龍: 遼에서 설치한 縣의 이름으로 치소는 지금의 吉林省 農安縣이다.  바로가기

각주 006)

鮮卑: 북아시아의 유목민으로 東胡의 支派이다. 처음에 鮮卑山 부근에 모여 살아 “鮮卑”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후 呼倫池 부근으로 이동하였고 다시 陰山 일대로 이동하여 다른 種族과 접촉하였다. 檀石槐가 鮮卑의 각 부족을 통합하고, 과거 匈奴에 필적하는 유목제국을 세웠다. 檀石槐 사후 잠시 분열되었으나, 軻比能이 다시 鮮卑 각 부족을 규합하였다. 조위 靑龍 3년(235) 軻比能이 魏의 자객에게 살해되면서 분열하다 이후 兩晉·南北朝時代에 慕容部가 前燕·後燕·西燕·南燕을, 乞伏部가 西秦을, 禿跋部가 南涼을, 그리고 拓跋部가 北魏를 세웠다. 宇文部는 北周를 세웠다.  바로가기

각주 007)

室韋: 각종 史書에서 失韋라고도 적었다. 北魏 시대부터 그들에 관한 기록이 나오며, 五部로 나뉘어 嫩江 및 黑龍江 주변에 살았다. 『北史』(卷94, 「室韋傳」: 3129)와 『隋書』(卷84, 「北狄傳」: 1882)에서는 “契丹之類”라 하여 남쪽에 거주하는 자들을 契丹, 북쪽에 거주하는 자들을 室韋라 적었다. 이들 중 額爾古納河 일대에 살던 蒙兀室韋는 蒙古部의 선조가 된다. 부락은 千戶 또는 몇 개의 千戶로 이루어졌으며, 우두머리는 莫賀咄이라 부른다. 북조시대 이래 중원과 긴밀한 관계였고, 후에 突厥에 복속되었다. 거란이 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室韋의 일부가 遼에 병합되었다.  바로가기

각주 008)

高麗(전37년경~668): 지금의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약 700여 년 동안 지배했던 우리나라의 古代國家 중 하나이다. 長壽王 때 이후 국호를 高麗로도 불렀으나, 대체로 高句麗로 알려져 있다. 高離·句麗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바로가기

각주 009)

奚國: 남북조시대에는 庫莫奚라 불렀던 종족이다. 東胡의 하나로 지금의 시라무렌강 유역에 살았고, 유목과 사냥을 겸했다. 北魏時代 종족이 점차 번성하여 辱紇主·莫賀弗·契箇·木昆·室得 등 五部로 나뉘었고, 점차 契丹에 同化되었다.  바로가기

각주 010)

營州: 北魏 太平眞君 5년(444) 설치한 州의 이름이다. 치소는 龍城縣(지금의 遼寧省 朝陽市)에 있었는데 후에 폐지했다. 隋 大業(605~617)初 遼西郡을 설치하고 唐 武德 원년(618) 이를 營州라 한 이래 柳城郡, 營州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로가기

각주 011)

大賀氏: 과거 거란의 종족명 중 하나이다. 당초 거란은 시라무렌강·老哈河 일대에서 흥기하여 부락연맹을 형성했다. 대하씨는 부락연맹의 우두머리를 역임했고 八部를 지배했다. 원래는 돌궐에 臣屬했는데 당 武德(618~625)初 使者를 보내 조공하였다. 이후 당과 돌궐에 의탁하거나 반기를 드는 등의 행위를 반복하다 마침내 돌궐에 의탁했다. 이로써 부락연맹의 통치권은 遙輦氏에게로 넘어갔다.  바로가기

각주 012)

遙輦: 거란의 일족으로 遙輦氏라고도 적는다. 당 개원 18년(730) 거란의 우두머리인 가돌우가 대하씨 부락연맹의 우두머리인 소고를 죽이고 屈烈을 세워 可汗으로 삼았다. 이로써 부락연맹의 영도권이 大賀氏에서 遙輦氏로 넘어갔다. 연맹 초기에 이들은 八部로 나뉘어 있었는데 천보 4년(745) 이후 당과 돌궐, 회골 등에 번갈아 의탁하였다. 야율아보기가 즉위하면서 부락연맹의 영도권은 다시 耶律氏에게로 넘어갔다. 일설에는 이들의 영도권이 9대에 걸쳐 이어졌기 때문에 遙輦九帳이라고도 한다. 바로가기

각주 013)

劉仁恭(?~914): 深州(지금의 河北省 深縣) 출신으로 처음에 부친을 따라 범양절도사 李可擧를 섬겼다.  바로가기

각주 014)

幽州: 前漢 武帝 때 설치한 13刺史部의 하나이다. 隋는 이전의 郡 및 總管府를 폐지하고 涿郡을 세웠다. 唐 武德 원년(618) 幽州를 설치했고 遼 會同 원년(938) 幽州府로 고쳤다. 바로가기

각주 015)

摘星嶺: 思鄕嶺·德勝嶺·望雲嶺·辭鄕嶺 등으로 적는다. 지금의 河北省 灤平縣 南十八盤嶺이다.  바로가기

각주 016)

阿保機(872~926; 재위 907~926): 遼朝의 창업자로 거란의 迭刺部 출신이다. 姓이 耶律氏이고 阿保機는 그의 字이다. 중국식 이름은 億이다. 後梁 開平 원년(907) 거란의 可汗으로 추대된 이래 거란의 八部를 통일하고 주변의 여러 종족을 복속하였다. 神冊 원년(916) 稱帝하고 국호를 大契丹國이라 하였고 후에 耶律德光이 국호를 고쳐 遼라 했다. 廟號는 太祖이다.  바로가기

색인어

이름

유인공(劉仁恭), 인공, 아보기(阿保機)

지명

거란(契丹), 후위(後魏), 중국, 고막해(庫莫奚),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 황수(黃水), 황룡(黃龍), 선비(鮮卑), 선비(鮮卑), 실위(室韋), 고려(高麗), 해국(奚國), 당, 영주(營州), 팔부(八部), 차개리부(伹皆利部), 을실활부(乙室活部), 실활부(實活部), 납미부(納尾部), 빈몰부(頻沒部), 내회계부(內會雞部), 집해부(集解部), 해올부(奚嗢部), 팔부, 팔부, 유주(幽州), 적성령(摘星嶺), 거란(契丹), 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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